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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보 14호와 보물 14호: 영산의 정수, 탑비의 풍경 속 오래된 정신

woong3j 2025. 8. 2. 23:00

한국의 국보 14호와 보물 14호: 영산의 정수, 탑비의 풍경 속 오래된 정신

서론: 깊숙한 산중의 절집, 그리고 고즈넉한 탑비 곁을 거닐다

한국의 문화재, 그중에서도 오래된 사찰의 전각과 탑비는 ‘눈에 띄지 않는 깊이’로 우리 민족의 정서와 미학을 지켜왔습니다. 국보 14호 ‘영천 거조사 영산전’과 보물 14호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는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영산전이 위치한 경북 영천 팔공산 자락의 고찰은 고려 말의 소박함과 신앙심, 그리고 각기 다른 표정의 오백나한상(나한: 아라한, 도를 이룬 불제자)을 품에 안고 있습니다. 수원의 창성사터에 세워졌던 탑비는 한 시대 고승의 생애, 구도의 결실을 조각과 한문 비문으로 고요히 전하고 있습니다.

국보 14호: 영천 거조사 영산전

위치: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화남리 산141

고려 말기 목조 건축의 결정판 ― 영산의 집

팔공산 동쪽 자락, 산속 아늑한 너럭바위 위에 자리 잡은 영산전은 1375년(고려 우왕 원년)에 건립된 전통 목조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은 은해사를 본사로 하는 거조사(과거는 거조암이라 불림) 중심전각으로 불교의 소박함과 건축미의 절제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영산전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넓고 낮은' 맞배지붕으로, 주심포 양식의 초기에 근접한 구조를 보여 줍니다. 외적으로는 붉거나 화려한 단청이 거의 없고, 황토색-아이보리 계열 벽면이 자연 풍경 및 인간 피부색과 닮아 있어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줍니다.

불필요한 장식을 거의 배제한 이 전각은 주심포 공포(기둥 위 지붕 파괴를 받치는 부분)로 간결한 선, 낮은 기단, 소박한 처마선 등 고려 전기까지의 오래된 양식이 잘 유지되어 있습니다. 건물의 좌우로 넉넉히 퍼진 지붕은 보는 이를 위압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감싸안는 인상을 줍니다.

오백나한과 불력, 그리고 영산전 내부의 풍경

영산전의 진가는 ‘내부’에 있습니다.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석가여래)이 자리하고 그 좌우로 무려 526개의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다른 석조나한상이 둘러앉아 있습니다. 나한상 하나하나는 크기, 의복, 표정이 달라 어느 것을 바라봐도 잠시 미소가 떠오르고, 강렬한 친근감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방문자들은 내부 나한상 앞에 공양물·기도를 두고, 매번 ‘단 한 번씩만 절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화도 내려옵니다.

영산전의 내부 양식은 ㄷ자 형태의 단에 오백나한상을 정성스레 배치해 거대한 공동체의 힘을 구현합니다. 숨겨진 벽화, 평주와 고주(높이 솟은 기둥)의 균형미, 천장의 연등천장 등도 고려 후기 목조건축의 진수를 만끽하게 해줍니다.

현장에서 받은 영적 울림

파란 하늘 아래 거조사의 영산전 앞에 서면, 도심의 소란함을 잊은 채 고요와 안정이 마음속에 가득 들어옵니다. 돌계단, 자연석, 두터운 황토색 벽, 분주하지 않은 공기—이 모든 것이 영산전의 고요한 존재감을 더합니다. 저는 오백나한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형식보다 내용이 먼저인’ 고찰의 본질, 인간의 구도와 위안, 그리고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는 신앙의 미덕까지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보물 14호: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위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3-1

고승 진각국사의 길, 돌비로 남다

보물 14호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는 수원 광교산 남쪽, 옛 창성사터에 놓인 높고 조용한 탑비입니다. 진각국사(천희, 1310~1385)는 고려말의 대표적 화엄종 승려로, 부석사(영주시) 중창, 소백산에서의 수행, 그리고 공민왕 등 조정과 선종의 중흥에 힘쓴 인물입니다.

이 탑비는 그가 입적한 후 우왕 12년(1386)에 세워진 석조 기념물로, 그의 생애·사상·승적과 제자들과의 교유, 시문, 그리고 불교계에 남긴 업적 기록을 한문으로 새겼습니다.

탑비는 간결한 직사각형 석재 받침과, 중간 비몸, 완만한 곡선의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래는 창성사터에 세워졌으나, 일제강점기 일대 변동과 도시개발 등으로 현 위치에 옮겨졌다고 전해집니다.

비문은 ‘다운’ 고려 후기 서체 중에서도 힘차고 투박한 맛을 남기며, ‘이색’이 짓고 혜잠이 글씨를 새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형식미, 글씨체, 문화사적 의미

탑비는 세월에 마모된 채로도 여전한 절제와 신비로움을 남깁니다. 고려 후기 비문의 형식적 간명화, 앞면의 글씨 굵기, 옆면 마감 등은 산을 등에 지고 ‘고결한 뜻만’을 남기겠다는 의 연장선 같습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정제된 짜임, 비문에 새겨진 스님과 왕, 대중의 이름, 불교계의 애환… 이는 오랜 세월 후손들에게 이루 다 못할 운문 같은 메시지를 남깁니다.

현장에서 마주친 그 느낌

수원 광교산 한쪽 매향동 산기슭에서 이 비석을 만났을 때, 바람과 햇빛, 주변 소나무 숲, 그리고 서늘한 돌의 결까지 모두 ‘침묵하는 힘’의 표본처럼 다가왔습니다.

비각 주변을 천천히 돌며, 사슴벌레가 기어오르는 거친 면, 바래진 비문, 바람 속에서 느끼는 승려의 구도정신… 탑비 하나만으로도 한 시대 대수인의 고독과 꿈,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묵직한 교류가 아직도 생생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결론: 오백나한의 눈빛과 고승의 돌비, 그리고 우리의 삶

영천 거조사 영산전은 ‘많은 이의 소박한 염원’이,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는 ‘한 인물의 굳은 신념과 시대적 여운’이 시대를 건너 여전히 우리 가슴을 두드립니다.

두 유산 모두 현장에서 직접 마주했을 때 비로소 완벽한 감동이 되며, 그곳에는 인간 공동체의 위안과 근원, 그리고 ‘한 번쯤은 나 역시 그 옆에 조용히 머물러야 할 이유’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돌과 나무, 불상과 탑비, 그리고 고요한 정적 속에 깃든 오랜 신앙과 사람살이의 진심이 천 년을 잇고 있습니다.

한 번쯤 팔공산 거조사, 광교산 창성사지 언저리를 직접 걸어보며, 오래된 문화유산 곁에서 시간과 존재의 본질을 천천히 되새겨 보시길 권합니다.